한국사(Korean History)/조선시대사(Joseon Dynasty)

미공개 왕릉 효릉과 조선 12대 임금 인종

김쓰 2023. 8. 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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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김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조선의 왕릉 40기 중 유일하게 미공개 왕릉으로 있던 효릉이 다음달 8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효릉과 능의 주인인 인종에 대해서 써보겠다.

 

가장 짧은 기간 재위한 인종

 

이름은 호, 자는 천윤이다. 중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중종의 두번째 왕비인 장경왕후, 비는 인성왕후이다. 중종 15년인 1520년 세자로 책봉되어 25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1544년에 즉위하였다. 기묘사화로 없어진 현량과를 복구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어질고 욕심이 적었으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은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 현량과 : 1519년 조광조의 건의로 시행된 추천을 통한 인재 선발 제도이다. 이때의 합격자를 기록한 책이 '천과방목'이다.

 

1544년 인종의 아버지인 중종이 죽고 오일 후에 즉위하였으며, 그 후년도 7월 1일 서른 한살의 나이로 죽었으니 여덟 달 정도 왕위에 있었다. 살아생전 중종의 병이 깊을때 먼저 약을 맛보고 손수 잠자리를 살폈다는 기록이 있을만큼 효성이 지극하였다. 실록에서는 중종의 승하이후 육일간 미음조차 먹지 않고, 다섯달 동안 곡을 그치지 않고서 아무 간도 되어있지 않은 죽만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날로 쇠약해져 가는 그를 위해 신하들이 고기반찬을 드시라고 청했던 기록도 여러 차례 나온다.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재위기간 때문에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해 역사 속에서 인종의 존재감은 매우 미약하다. 

 

경빈 박씨와 작서의 변

 

작서의 변이란 1527년 2월 26일 중종 22년 쥐를 잡아 동궁을 저주한 사건을 말한다. 동궁 해방에 불로 태운 쥐 한마리를 동궁의 북쪽에 있는 뜰에 위치한 은행나무에 걸어놓고 생나무 조각으로 방서를 만들어 걸어두었다. 이때 동궁이 훗날 인종으로 그는 해생, 2월 25일이 생일이었다. '해'는 한자로 돼지를 뜻하는데, 돼지와 불에 태운 쥐가 비슷하므로 당시의 조정 대신들은 동궁을 저주한 것이라 하였다.

 

* 동궁 : 세자

* 해방 : 24방위의 하나. 정북에서 서쪽으로 30도 되는 방위를 중심으로 한 15도의 각도 안

* 방서 : 타인을 깍아내리는 글

 

이에 이어서 3월 초하루에도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자, 우의정 심정과 이유청과 함께 중종에게 말해 범인을 검거하였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채 의혹만 커지자 당시 범인으로 의심되었던 경빈 박씨의 시녀와 사위인 홍려의 종들이 심문 중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이에 경빈 박씨와 그녀의 아들인 복성군이 함께 서인이 되어 쫓겨나게 된다. 이후 다시 동궁을 비방하는 일이 생기자, 이에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다시 범인으로 몰려 결국 중종에게 사약을 건내받아 먹고 죽고 만다.

 

뒤이어 경빈 박씨의 딸들인 두 옹주가 폐서인 되었고, 홍려도 매를 맞아 죽게된다. 당시 광천위이던 김인경은 내쫓겨나고, 좌의정 심정 또한 경빈 박씨와 결탁한 것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게된다.

 

이후, 1532년 이종익의 상소로 인해 진실이 밝혀지는데 진범은 김안로의 아들 희였다. 김안로가 심정과 유자광 등에게 원한을 품어오던 중 아들 희를 시켜 작서의 변을 일으킨 것이다. 

 

인종과 계모 문정왕후

 

문정왕후는 인종의 계모이다. 인종의 친모인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자마자 죽었는데, 이에 인종의 세자시절부터 생모 장경왕후의 외척인 대육과 계모 문정왕후의 외척인 소윤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고 나서는 경원대군을 세자로 세우려고 했던 문정왕후의 견제와 냉대가 이어졌다. 야사에 따르면 작서의 변 또한 문정왕후의 지시로 인해 생긴 일이라는 말도 있었으며, 인종 또한 중종의 상을 치르면서 힘들어 죽게 된 것이 아니라 문정왕후가 건내준 독이 든 떡을 먹고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정왕후의 욕망은 크게 묘사된다. 

 

인종과 그의 정비 인성왕후

 

인종에게는 정식 왕비인 인성왕후 박씨가 있었으나, 후궁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에게서도 자녀를 두지 못했다. 이에 인종이 죽고 그의 이복동생인 명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다. 

 

1547년 명종 또한 자녀없이 죽음에 따라 중종의 서손인 하성군을 명종의 양자로 삼아 선조로 즉위하게 된다. 당시 문정왕후도 죽은 이후라 대왕대비의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인종의 정비였던 인성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였다. 대신 그녀의 손아래 동서인 명종의 정식 왕비 인순왕후가 의성왕대비가 되며 어렸던 선조의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이는 임금의 큰어머니인 인성왕후보다 양어머니인 인순왕후가 선조에게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 서손 : 서자의 아들

* 수렴청정 : 왕의 나이가 너무 어려 국정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을 경우에 왕실의 어른이 국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처리하는 것

 

미공개 왕릉 효릉

 

효릉은 인종의 무덤으로 그의 어진 성품과 효심을 반영해 사후 그를 칭할때 어질 인을 써 인종, 효심을 반영하여 그의 능호를 효릉이라 칭한 것이다. 인종은 부모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하는데 이에 중종과 장경왕후의 능인 정릉 근처에서 그를 묻었다. 안타깝게도 인종의 사후 중종 곁에 묻히기를 원했던 중종의 세번째 왕비인 문정왕후로 인해, 중종의 능은 이장하여 문정왕후와 묻히게 된다. 인종의 친모인 장경왕후의 무덤은 이후 홀로남겨져 희릉으로 불리게 된다.

 

효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유일한 미공개 능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1960년대 서삼릉 능역 일부가 매각되어 현재 농협경제지주 산하 젖소개량사업소, 한국마사회, 문화재청 등 세 기관이 서삼릉 일대의 땅을 나눠보유하고 있는데, 효릉은 젖소개량사업소 목장에 둘러싸여 있어 목장의 방역상 이유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랬던 미공개 왕릉 효릉이 다음달 8일부터 개방될 예정이라고 한다. 본래는 방역으로 인해 제한이 지속되고 있어 불가능하였으나, 효릉으로 향하는 새 관람로를 개설해 방역절차없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효릉은 9월 8일부터 하루 3차례, 회당 30명씩을 정원으로 하여 사전 관람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입장하게 되면 약 2시간 동안 전문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효릉과 그 근처의 왕릉 권역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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