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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김쓰 2023. 10. 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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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김쓰

 

인도의 교육열이 뜨겁다. 뛰어난 인재가 집안 전체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하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도의 그런 교육열에 대한 글들을 보다가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 인물이 라마누잔이다. 수학과 관련이 없는 삶을 살다보니 처음 들어본 이 수학자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에도 인정받아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되기도 했던 사람이란다.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의 일생

 

1887년 인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라마누잔은 수학에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다. 집안이 가난한 탓에 별다른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독학으로 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세의 나이로 수학책에 적힌 정리를 증명하다가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지만 수학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탓에 대학에서 제적 당하고 만다. 그 이후 22세 어린 나이로 결혼을 하였고, 우체국 회계원으로 일을 하였다. 그 시절에도 라마누잔은 수학에 대한 정리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공무원이 고위 관료에게 보고해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원을 받아 1911년 인도의 한 학회지에 그의 첫번째 논문이 실린다. 그렇지만 기대하던 반응은 없었다. 라마누잔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수학으로 유명하던 영국의 수학자들에게 노트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단순히 정리만 나열한 인도 청년의 노트를 진지하게 받아준 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천재 수학자 하디였다. 당시 라마누잔의 노트에는 1부터 존재하는 모든 자연수를 더하면 음의 값을 갖는 분수가 나온다는 정리의 결론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말에서 라마누잔은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에 사용된 리만 제타 함수를 응용한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하디는 라마누잔을 영국으로 초청하였다. 이에 라마누잔은 아내를 남겨둔 채 영국으로 향한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보니 인도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그럼에도 하디와 그의 친구인 존 이든저 리틀우드의 도움에 힘입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이어나갔다면 하마누잔의 삶도 꽃이 피었으련만,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라마누잔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지자 종교적 이유로 채식주의자였던 하마누잔의 식량 수급이 힘들어 영양실조에 걸리었고, 그의 든든한 후원자 중 한명인 리틀우드도 육군에 징집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디는 라마누잔의 곁을 지켰고, 라마누잔은 연구를 이어갔다. 불행하게도 영국에 온 지 3년만에 라마누잔은 폐결핵으로 쓰러지고 만다. 요양원에서 다시 2년을 버티었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인도로 돌아갔다.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도 수학 공식을 쓰던 라마누잔은 1920년 4월 26일 생을 마쳤다.

 

라마누잔의 증명들은 어떻게 평가 받을까?

  • 라마누잔이 영국의 여러 수학자들에게 그의 노트를 보낼때 그의 노트에는 100여개의 정리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대학에 있는 동안은 약 600개에 달하는 정리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 낱장으로 된 600개의 기록은 19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조지 앤드류스 교수에게 발견되어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 라마누잔이 발견한 새 함수 17개가 세타함수로 보이는 mock modular forms 가짜 모듈러형식 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라마누잔 사후, 이 가짜 모듈러형식을 확장하면 물리학자들이 엔트로피나 블랙홀을 계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밝혀냈다고 라이브사이언스가 전하기도 하였다.
  •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하면서 30편 넘는 논문을 발표하며 영국의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다. 그가 발표한 논문 중 분배함수의 성질에 관한 연구를 포함하여 여러 논문들이 정수학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라마누잔은 20세기의 손꼽히는 수학자 중 한명이다. 비록 수학적 지식이 부족한 입장으로서 글을 쓰다보니, 그의 일생에 대학 간단한 요약으로 글을 맺지만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의 일생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라마누잔이 흙수저로 대표되는 신분의 수학자였다보니 그의 후원자들을 만나 배려를 받지 못하였더라면, 그의 뛰어난 지성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채로 생을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이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에 대한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도 있으니 궁금하다면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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