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조약 70년, 전쟁터에서 피어난 유럽의 평화

글·사진 김쓰
1957년 3월 25일, 로마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여섯 개국 대표가 서명한 로마조약은 전후 유럽의 폐허를 딛고 평화와 번영을 향한 공동의 결의를 담은 선언이었다. 1958년 1월 1일 조약이 발효되면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출범했고, 이는 새로운 평화 체제의 초석이 되었다.
전쟁의 상처에서 탄생한 연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은 절망 속에서 화해와 재건을 꿈꿨다. 로마조약은 국가 간 경쟁을 넘어 공동의 법적 의무와 시장통합 과정을 통해 전쟁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획기적 전환점이었다. 주권 일부를 공유하고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함으로써, 오래된 적대 관계를 극복하고 평화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마셜 플랜에서 로마로 이어진 희망
1948년 시작된 마셜 플랜은 유럽 전역의 산업 기반을 복구하고 무역장벽을 낮춰 경제 회복을 촉진했다.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를 통해 협력 경험을 쌓은 회원국들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의 핵심이라는 확신을 키웠다. 이러한 환경 위에서 1957년 로마조약이 발효되었으며, 경제적 번영을 평화 유지의 도구로 전환했다.
냉전의 그림자 속 협력 - 동서 유럽의 교류
서유럽 6개국이 구축한 경제공동체는 이후 동유럽권과도 교류를 확대하며 냉전 체제에서도 협력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무역과 학술 교류, 인적 왕래가 점차 늘어났고, 이는 유럽통합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의 교류 경험은 동서 유럽 간 신뢰를 쌓고, 통합의 범위를 확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시민이 만든 유럽 이야기
정치인들의 결단만으로는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없었다. 1987년 시작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학생 교환을 통해 청년 세대에 유럽 시민 의식을 심어 주었고, 문화적 차이는 오히려 연대를 강화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청년들이 국경을 넘어 우정을 쌓으며 형성한 네트워크는 제도적 통합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평화의 씨앗이 자라다 - 오늘의 유럽
로마조약 발효 이후 공동시장의 완성과 이사회 확장을 거쳐 27개 회원국을 아우르는 유럽연합이 탄생했다. 단일시장·유로화·솅겐 협정은 조약이 심은 평화의 씨앗이 거대한 숲으로 자란 결과다. 브렉시트, 난민 위기, 포퓰리즘이라는 도전에도 '다양성 속의 통합' 정신은 유럽을 하나로 이어 주는 등불이 되어 기후변화와 디지털 전환 같은 현대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