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폴 부훌 - 마야인은 왜 옥수수로 만들어진 인간일까

글·사진 김쓰
태초의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과 바다만 존재했던 그 거대한 침묵 속에서 신들이 깨어났다. 과테말라 고지대에 살았던 K'iche' 마야 사람들의 신화인 '포폴 부훌'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바라본 신들은 큰 결심을 했다.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의지였다.
그 신들의 이름은 쿨쿨칸(Kukulkan), 테페우(Tepeu), 그리고 하늘의 신 우라칸(Uracan)이었다. 이들은 협력하여 대지와 산을 만들었고, 강과 구름, 안개를 펼쳤다. 동물들도 창조했다. 하지만 신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창조가 아니었다. 신들을 숭배할 수 있는, 신들을 기억할 수 있는 존재를 원했다. 인간을 만들려는 열망이 신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첫 번째 시도 - 진흙 인간의 실패와 신의 겸손함
첫 번째 시도는 진흙이었다. 신들은 진흙을 빚어 인간의 형태를 만들었다. 조각가의 손길이 진흙을 다루듯, 신들의 손은 섬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흙 인간은 비가 내리면 흘러내렸다. 빗소리가 내릴 때마다 그들의 몸은 녹아내렸고, 물이 흐르는 곳으로 흩어졌다. 신들은 깨달았다. 진흙은 너무 약했다. 영원성을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이 포폴 부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신의 좌절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신들도 실패를 경험했고, 그 실패 속에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진흙은 생성과 소멸을 상징한다. 마야인들에게 진흙은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였다. 그들이 살던 중앙아메리카의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서 진흙은 비가 오면 쉽게 씻겨 내려가는 물질이었다. 신들이 진흙 인간을 버린 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을 찾기 위한 신의 집요함을 나타낸다. 이는 완벽성을 추구하는 마야인의 우주관(신과 인간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두 번째 시도 - 나무 인간과 의식의 부재
진흙 인간이 사라지자 신들은 두 번째 시도를 했다. 나무였다. 신들은 나무를 깎아 인간의 형태를 만들었다. 나무 인간들은 진흙 인간보다 오래 지탱했다. 그들은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았고, 말도 할 수 있었다. 번식도 했고, 자손을 낳고 번성했다.
하지만 신들은 곧 깨달았다. 나무 인간들은 말은 했지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신을 숭배하지 않았다. 신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신성함이 담겨 있지 않았다. 신들의 실망은 깊었다.
그래서 신들은 홍수를 일으키고 괴물들을 보냈다. 나무 인간들은 재앙 속에서 도망쳤고, 나무 위로 올라간 그들의 엉덩이에서는 꼬리가 자라났다. 온몸은 털로 뒤덮였다. 나무 인간들은 원숭이가 되어버렸다. 포폴 부훌에 따르면, 오늘날의 영장류는 그 나무 인간들의 후손이다.
이 이야기는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가. 신들이 원한 것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의식이었다. 영혼이었다. 신과의 대화가 가능한 존재였다.
세 번째 시도 - 옥수수 인간의 탄생과 완벽함
마야의 세 번째 창조, 그리고 마침내 성공이 찾아왔다. 신들은 더욱 신중해졌다. 새로운 인간의 재료를 찾기 위해 코요테, 까마귀, 앵무새, 여우를 세상에 보냈다. 이 동물들은 신들의 메신저였고, 그들이 찾아온 것은 노랗고 하얀 옥수수였다.
신들은 옥수수 가루의 맛을 보았다. 그 순간, 신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이것이다! 신들은 확신했다. 옥수수로 만들어진 인간이 완벽한 인간이 될 것이라고. 신들은 파힐(Paxil)이라는 지역으로 가서, 옥수수 반죽으로 네 명의 인간을 빚어냈다. 이들이 마야 문명의 첫 번째 인간, 창세의 시조였다. 옥수수 인간은 진흙 인간과 나무 인간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들은 신을 숭배했다. 사물의 진리를 깨달았다. 신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신들은 그제야 만족했다.
옥수수 - 신화 속 재료에서 문명의 기초까지
왜 옥수수일까? 이것이 포폴 부훌의 가장 신비로운 질문이다.
마야 문명에서 옥수수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 자체였다. 마야인들의 조상들이 도착했을 때 중앙아메리카의 땅은 5월부터 11월까지 비가 많이 내렸고, 개울과 강, 호수가 넘쳤다. 하지만 2월이 되면 비가 그치고, 5월까지는 물이 부족했다. 그 극한의 조건에서 마야인들은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 심기는 정확한 계산이 필요했다. 강수량을 예측하고, 파종의 시기를 정해야 했다. 이를 위해 마야인들은 밤하늘의 별을 관찰했고, 달력을 만들었고, 신관이라는 새로운 권력층이 탄생했다. 신관들은 신과 소통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이 옥수수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낼 때, 신들은 비를 내려주었다고 마야인들은 믿었다.
옥수수 없이는 마야 문명이 없었다. 그래서 포폴 부훌에서 인간이 옥수수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야 문명이 옥수수 위에 세워졌다는 진실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야에게 옥수수는 생명 그 자체였다. 포폴 부훌의 한 장면에 따르면, 첫 번째 태양신 훈 우나푸의 머리가 나무에 걸려 있을 때, 그 머리에서 옥수수가 생겨났다고 한다. 즉, 신이 변해 만들어진 작물이 옥수수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옥수수로 만들어진 인간에게는 영혼과 지혜가 깃들어 있었다. 마야인들은 자신들을 "옥수수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그 영적 연결고리를 결코 잊지 않았다.
완벽함 속의 한계 - 신들이 인간의 능력을 제한한 이유
포폴 부훌이 가장 흥미로운 역설을 드러내는 순간이 바로 여기다. 신들은 왜 완벽한 인간을 만든 후에 그들의 능력을 제한했을까?
신들이 옥수수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먼 곳의 일도, 가까운 것도 모두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신들과 동등한 지혜를 갖춘 존재들이었다. 이에 신들은 불안해했다. 인간이 신들을 따라잡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신들은 인간의 시력에 안개를 걸었다. 인간은 가까운 것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의식에서 부분적 의식으로 변환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억압이 아니라, 신의 사랑이라는 점이 포폴 부훌의 깊은 의미다.
인간이 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다면, 자유의지가 완전해진다. 완전한 자유의지는 신에 대한 배반도 가능하게 한다. 반항도 가능하게 한다. 신들이 인간의 능력을 제한한 것은 인간과 신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 마야 신화에서 제한은 파괴가 아니라 보존이고, 한계는 질서이며, 불완전성은 존경의 대상이다.
이를 통해 마야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해했다. 자신들은 제한된 존재이지만, 그 제한 속에서 신과의 조화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현재의 한계 속에서 충실함을 지향하는 것이 마야의 삶의 방식이었다.
영웅 쌍둥이의 모험 - 저승에서 죽음의 신들을 이기다
포폴 부훌의 후반부는 더욱 극적이고 신비로워진다. 영웅 쌍둥이 훈아푸(Hunahpu)와 이슈발랑케(Xbalanque)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전에, 첫 번째 쌍둥이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훈 우나푸(Hun Hunahpu)와 부쿩 우나푸(Vucub Hunahpu), 이 두 형제는 전설적인 공 놀이 선수였다. 그들은 매일 마야의 신성한 구기 게임인 빠타(Pok-ta-Pok)를 했는데, 그 소음이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저승의 신들, 시발바(Xibalba)의 죽음의 군주들이 그 소리에 화를 냈다.
시발바는 마야 신화에서 가장 어두운 장소였다. 그곳은 죽음의 신들과 조력자들이 지배하는 명계였고, 영혼들은 그곳에서 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시발바의 최고 군주는 헌 카메(Hun Came)라고 불리는 "첫 번째 죽음"과 부쿱 카메(Vucub Came)라고 불리는 "일곱 죽음"이었다.
시발바의 군주들은 훈 우나푸와 부쿩 우나푸를 저승으로 소환했다. 그들은 저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포폴 부훌은 그 비극을 간결하게 기록했다. 첫 날 밤 시발바 군주들은 쌍둥이에게 담배와 횃불을 주고 아침까지 꺼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쌍둥이는 밤새 그것을 유지하지 못했다. 저승의 속임수였다.
다음날 구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진정한 경기가 아니었다. 저승의 군주들은 인간의 머리로 만든 공을 사용했다. 훈 우나푸와 부쿩 우나푸는 그 게임에서 졌다. 더 정확히는, 그들은 희생제의 대상이 되었다. 훈 우나푸의 머리는 잘렸다. 그의 몸은 부쿩 우나푸와 함께 묻혔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났는가? 아니다. 신화는 여기서 기적을 낳는다.
시발바의 군주들은 훈 우나푸의 머리를 나무에 걸어두었다. 그 나무는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무는 마치 처음부터 열매를 맺은 것처럼 풍요로워졌다. 사람들은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스퀵(Xquic)이라는 시발바 군주의 딸이 그 나무를 보러 왔다. 호기심 많은 이 여신 같은 존재는 열매를 따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훈 우나푸의 머리가 스퀵의 손에 침을 뱉었다.
이것이 얼마나 낭만적이고도 신비로운 순간인가. 죽음 속에서 탄생이 싹틀 수 있다는 믿음. 그 침 때문에 스퀵은 임신했다. 아홉 달이 지나고, 두 번째 쌍둥이 영웅이 탄생했다. 훈아푸(Hunahpu)와 이슈발랑케(Xbalanque)였다.
지혜와 용기의 투쟁 - 영웅 쌍둥이의 저승 정복
훈아푸와 이슈발랑케는 지하 세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이 저승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심했다. 복수하기로. 이 쌍둥이는 아버지들과 달랐다. 그들은 지혜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형과 동생에게 매일 사냥을 강요하던 이복 형제들로부터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블로우건(입으로 날리는 화살)이라는 무기로 새를 사냥하는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마법도 배웠다.
결국 그들도 저승으로 소환되었다. 시발바의 군주들은 처음 두 영웅과 똑같이 이들을 시험하려고 했다. "밤새 담배와 횃불을 꺼뜨리지 말아라."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훈아푸와 이슈발랑케는 마코 앵무새의 꼬리와 반딧불을 이용했다. 앵무새 깃털을 횃불처럼 보이게 했고, 반딧불을 담배 불씨처럼 보이게 했다. 저승의 속임수를 자신들의 지혜로 이겨낸 것이다. 다음날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쌍둥이는 죽음의 신들의 공을 이겨낸 공으로 게임을 했다. 그들은 경기에서 이겼다. 화난 시발바의 군주들은 쌍둥이를 화덕에 넣어 태웠다. 뼈를 갈아 강물에 뿌렸다.
하지만 사흘 뒤, 쌍둥이는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살아났다. 이를 본 저승의 군주들은 경악했다. 쌍둥이는 말했다. "우리는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 시발바의 군주들은 의심했지만 궁금했다. 그래서 쌍둥이에게 그 마술을 직접 보여달라고 명령했다. 훈아푸와 이슈발랑케는 묘기를 시작했다. 한 영웅이 다른 영웅을 죽이고 다시 살리는 기술을 보여줬다. 저승의 군주들은 열광했다.
"이제 우리를 그렇게 해달라!"
이것이 마지막 함정이었다. 쌍둥이는 시발바의 군주들의 심장을 꺼냈지만, 다시 살리지 않았다. 죽음의 신들이 죽었다. 저승의 질서가 뒤바뀌었다. 영웅 쌍둥이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로 올라갔다. 훈아푸는 태양이 되었고, 이슈발랑케는 달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마야인들은 밤하늘을 바라볼 때 그 쌍둥이 영웅들을 본다. 죽음을 이기고 하늘에 자리 잡은 두 형제를.
영웅 쌍둥이의 이야기는 마야인들의 우주관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마야인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믿었다. 시발바는 무서운 곳이지만, 그곳을 이겨낸 영웅은 더욱 높은 경지에 올라간다. 지혜와 용기로 죽음을 극복하면, 우주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마야 사회 전체의 철학을 반영한다. 모든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영원함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포폴 부훌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 - 식민지 시대의 저항과 보존
포폴 부훌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이유를 알아야 한다.
1524년, 스페인 정복자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 중앙아메리카에 도착했다. 마야 문명은 그 황금기를 지난 후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분열된 상태였다. 스페인의 무장 정복자들은 칼과 말, 그리고 유럽에서 가져온 질병으로 마야 문명을 무너뜨렸다. 인디오 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했다.
이 와중에 K'iche' 마야의 엘리트들이 비장한 결단을 내렸다. 고대 신화를 라틴 알파벳으로 기록하기로 한 것이다. 포폴 부훌이 기록된 시간은 1554년에서 1558년 사이로 추정된다. 스페인 식민지배의 초기, 마야 문명이 무너져가는 그 순간에. 이것은 저항의 행위였다. 침략자들의 언어인 라틴 알파벳을 사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마야인들의 영혼이었다. 자신들의 창조 신화를, 영웅들의 이야기를, 우주관을 기록해 후대에 전하려는 절박한 바람이었다.
프란시스코 시메네즈(Francisco Ximenez) 신부라는 스페인 선교사가 1701년에 이 텍스트를 발견했다. 그는 원문을 복사했고, 그 사본은 뉴베리 도서관(Newberry Library)의 에드워드 아이어 컬렉션에 보관되었다. 1950년대에 아드리안 레시노스(Adrian Recinos)라는 과테말라 학자가 스페인어로 번역했고, 이후 데니스 테드록(Dennis Tedlock)과 다른 학자들이 더욱 정확한 영어 번역을 만들었다.
특히 데니스 테드록의 "Popol Vuh: The Definitive Edition of the Mayan Book of the Dawn of Life and the Glories of Gods and Kings"(1996년, Simon & Schuster)는 K'iche' 마야 원어민 정보 제공자 안드레스 실로이(Andres Xiloj)와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테드록은 1986년 이 번역으로 PEN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미국인류학협회 회장상을 아내 바버라 테드록과 함께 수상했다.
포폴 부훌이 우리에게 도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마야인들의 집요한 의지와 서양 학자들의 존경이 만난 결과다.
결론 - 옥수수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영원한 여정
포폴 부훌을 읽고 나면,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온다. 이것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 문명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우주에 대한 겸손한 고백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마야인들은 포폴 부훌을 통해 묻는다. 답은 간단하고도 깊다. "우리는 옥수수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신의 시행착오 속에서 탄생했고,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는 죽음을 통해 영원해진다.
신들이 진흙 인간을 버리고 나무 인간을 포기한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더 나은 인간을 만들고 싶은 신의 집요한 사랑. 그리고 마침내 옥수수로 만들어진 인간이 탄생했을 때, 신들은 만족했다. 왜냐하면 그 인간들은 신을 숭배할 수 있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폴 부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완벽함은 목표가 아니라 여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는 것. 영웅 쌍둥이가 죽음의 신들을 이기고 하늘로 올라가 태양과 달이 되었듯이, 우리도 우리의 삶을 통해 무언가 영원한 것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포폴 부훌이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다.
마야인들은 500년 전 스페인 군대의 칼이 휘몰아칠 때, 자신들의 신화를 라틴 알파벳으로 기록했다.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문명은 무너질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말로, 포폴 부훌은 영원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그 신화 속에서 답을 찾는다.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옥수수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자연의 한 부분이며, 순환의 일부이며, 우주의 미래를 함께 만드는 존재들이다. 포폴 부훌은 그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