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사(World History)/신화, 전설, 민담(Myth, Legend, Folk tale)

마하바라타 - 판다바와 까우라바의 대전투, 크리슈나의 가르침으로 읽는 인생의 의무와 정의

by 김쓰 2025. 12. 2.
반응형

쿠루크셰트라 평원 위의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보았다

글·사진 김쓰

 

기원전 10세기경 인도 아리야 문명의 쿠루 왕국 평원에서 벌어진 18일간의 전투는 단순한 왕위 계승 전쟁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대서사의 무대가 되었다. 약 10만 슐로카(송)로 알려진 방대한 분량의 <마하바라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보다 8배나 긴, 인류 역사상 가장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고대의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 증오와 사랑, 의무와 자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현인 비야사(Vyasa)가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이 서사시는 기원전 400년부터 서기 400년경에 걸쳐 구전되고 증보되면서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 <마하바라타>라는 제목은 '바라타족의 위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은 지금도 자신의 조국을 '바라타'라 부를 만큼 이 서사시는 인도의 정신과 문화를 상징한다.

 

 

아르주나의 도덕적 딜레마와 바가바드 기타 - 전쟁의 정당성을 묻다

 

쿠루크셰트라 평원에 두 군대가 마주했을 때, 판다바 형제의 셋째이자 최고의 궁수 아르주나는 전차 위에서 활을 떨어뜨렸다. 맞은편에 서 있는 이들은 적이 아니라 그가 평생 존경해온 스승 드로나, 할아버지 비슈마, 그리고 사촌 형제들이었다. "이들을 죽이고 얻는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라는 아르주나의 절규는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뼈아픈 도덕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이때 전차를 모는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전한 가르침이 바로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이다. 마하바라타 제6권 비슈마파르바(Bhishma Parva)에 수록된 이 경전은 총 18장 700구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힌두교 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말한다. "네 의무(다르마, dharma)는 크샤트리아 전사로서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행위 그 자체에 최선을 다하라."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는 단순한 전쟁 전술의 논의가 아니다. 이것은 '올바른 행동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인가', '개인적 양심과 사회적 의무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의 연속이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신에게 있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최선의 행위뿐이라는 급진적인 해방의 메시지를 전한다.

 

Q: 아르주나는 왜 전쟁을 거부했는가?

 

A: 아르주나는 사랑하는 친족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깊은 도덕적 갈등에 빠졌다. 승리 이후의 왕국보다 가족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슈나는 그에게 개인적 감정이 아닌 보편적 의무를 수행할 것을 가르쳤다.

 

 

판다바 다섯 형제의 정의로운 전쟁 - 쿠루크셰트라 전투 18일간의 격렬한 대전

 

판다바 형제는 유디슈티라(Yudhishthira), 비마(Bhima), 아르주나(Arjuna), 나쿨라(Nakula), 사하데바(Sahadeva) 다섯 명으로, 판두왕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적은 판두왕의 형인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인 까우라바 100형제였다. 드리타라슈트라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기에 동생 판두가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판두가 저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다.

 

쿠루크셰트라 전쟁은 기원전 10세기경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고 추정되며, 18일 동안 계속되었다. 전쟁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판본에 따라 최소 400만에서 최대 800만 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되었으며, 인도 전역의 왕국들이 양측으로 나뉘어 참전했다.

 

초반 10일간은 판다바 형제의 증조부이자 까우라바군 총사령관인 비슈마가 맹위를 떨쳤다. 16세 소년 아비마뉴(아르주나의 아들)가 증조부에게 도전했을 때, 비슈마는 "너는 죽기에 너무 어리구나"라고 말하며 급소를 피해 화살을 날렸지만, 결국 소년은 전장에서 쓰러졌다. 11일째부터 드로나가 총사령관이 되었고, 16일째에는 카르나가, 18일째에는 샬리야가 지휘를 맡았으나 모두 전사했다. 최종적으로 판다바 측이 승리했으나, 양측 모두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드라우파디의 모욕과 여성의 명예 - 전쟁의 불씨를 당긴 순간

 

전쟁의 불씨는 한 여인의 굴욕에서 시작되었다. 판다바 형제 다섯 명의 공동 부인이었던 드라우파디는 판찰라 왕국의 공주로, 뛰어난 미모와 강인한 성격을 지녔다. 까우라바 형제의 장남 두료다나는 숙부 샤쿠니와 함께 음모를 꾸며 유디슈티라를 주사위 도박으로 유인했다.

 

유디슈티라는 도박에서 왕국, 형제들, 그리고 마침내 부인 드라우파디까지 판돈으로 걸고 모두 잃었다. 까우라바의 차남 두샤사나는 드라우파디의 머리채를 잡고 공개 집회장으로 끌고 왔으며, 그녀의 옷을 벗기려 했다. 드라우파디는 이 부당한 상황을 끝까지 항의했고, 크리슈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옷이 끝없이 늘어나 굴욕을 면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 이후 드라우파디는 판다바 형제에게 복수를 맹세하게 했고, "두샤사나의 피로 머리를 감기 전까지는 머리를 묶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여인의 분노와 치욕은 18일간의 대학살로 이어졌고, 결국 비마가 두샤사나를 죽이고 그의 피로 드라우파디의 머리를 적시는 것으로 복수는 완성되었다. 드라우파디의 수모는 단순한 개인적 치욕을 넘어, 정의와 명예, 그리고 여성의 존엄이 짓밟혔을 때 어떤 재앙이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Q: 드라우파디 사건은 왜 마하바라타에서 중요한가?

 

A: 드라우파디의 수모는 전쟁의 직접적인 발화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의 명예와 존엄, 정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부당함에 맞서 싸운 능동적 인물로 묘사된다.

 

 

세 가지 영적 수행법 - 행위의 도를 통한 해탈의 길

 

<바가바드 기타>는 단순히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해탈(모크샤, Moksha)에 이르는 세 가지 영적 수행법을 제시한다. 이 세 가지 요가는 서로 보완적이며, 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카르마 요가(Karma Yoga)는 '행위의 수행법'으로,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행위는 하되 그 결과를 바라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는 현대의 직장인, 부모, 교사 등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자세를 의미한다. 스트레스와 불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가르침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박티 요가(Bhakti Yoga)는 '헌신의 수행법'으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귀의를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바가바드 기타 제12장에 나오는 크리슈나의 말씀은 깊고도 부드럽다. "당신의 마음을 나에게 고정할 수 없다면, 내게 헌신하는 영적 수행의 원칙을 따르라. 이런 방식으로 나에게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을 개발하라." 박티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신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을 의미한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신을 사랑하는 것이 박티요가의 본질이다.

 

갸나 요가(Jnana Yoga)는 '지혜의 수행법'으로, 신성한 지식과 초월적 깨달음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경전을 탐구하고, 명상을 깊이 있게 하며,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의 본성을 지적으로 분석하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라마 크리슈나 파라마한사의 말씀이 이를 잘 설명한다. "불에 대한 이야기를 단지 듣기만 한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다. 불을 본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불을 피우고 그것으로 음식을 해먹을 줄 아는 사람은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다."

 

크리슈나의 가르침은 이 세 수행법이 모두 같은 목표, 즉 해탈(모크샤, Moksha)로 향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행위의 결과에 관계없이 마땅히 행해야 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진정한 삶의 수행자이자 요기이다. 이들은 제사의 불을 지피지 않거나 의례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즉, 현세에서의 삶 자체가 영적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급진적인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비슈마의 의무와 비극 - 도덕적 원칙 사이에서 무너져내리다

 

모든 영웅에게는 비극이 따른다. 쿠루크셰트라 전쟁 최고의 무사이자 마지막 수호자의 명예를 지킨 비슈마(Bhishma) 피타마하, 즉 '위대한 할아버지'가 그렇다. 비슈마는 이미 늙은 몸으로 쿠루 왕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비슈마의 인생은 의무와 개인적 감정 사이의 극적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샨타누 왕의 재혼 조건으로 평생 독신의 서약을 하였고, 왕위를 포기했다. 이것이 그에게 '무조건적 충성의 상징'이자 동시에 '도덕적 외로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비슈마는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판다바 형제가 정의 편에 있고 까우라바가 부당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쿠루 왕가의 총사령관으로서 까우라바 편에 서야 했다. 그의 평생을 관통한 '의무'가 그의 도덕적 양심과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전쟁의 10일째, 비슈마는 판다바의 16세 소년 아비마뉴와 맞부딪혔다. 아비마뉴는 그의 할아버지에게 화살을 퍼붓고, 비슈마도 응전했다. 하지만 비슈마는 소년의 목숨을 애석히 여겨 급소를 피해 화살을 날렸다. 결국 소년은 비슈마의 화살에 쓰러졌지만, 이 순간 비슈마의 심장도 함께 상처를 입었다.

 

11일째, 비슈마는 여전사 시칸디에게 항복했다. 비슈마는 여성에게는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서약을 지켰기 때문이다. 아르주나는 그 틈에 비슈마에게 날카로운 화살을 날렸고, 비슈마는 무수한 화살에 찔린 채 땅에 누웠다.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비슈마는 아직도 까우라바와 판다바 모두를 사랑했고, 그들의 미래를 걱정했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Q: 비슈마의 비극은 무엇인가?

 

A: 비슈마의 비극은 의무와 도덕 사이의 근본적 불일치이다. 그는 평생 충절을 지켰으나, 결국 그 충절이 불의에 봉사하게 되었다. 도덕적 절대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의 성실성도 무의미할 수 있다는 철학적 절망을 드러낸다.

 

 

판다바의 승리 후 회한과 복원의 시간

 

18일간의 전쟁은 끝났고, 판다바 형제는 승리했다. 하지만 왕국은 황폐했고, 유디슈티라의 손은 죄업으로 얼룩져 있었다. 약 10만 슐로카로 알려진 이 서사시 끝부분은 승전국의 환호가 아니라, 비통한 성찰로 채워진다.

 

유디슈티라는 천만의 병사들이 흘린 피로 물든 쿠루크셰트라를 보며 절규했다. 그는 아버지 판두가 했던 저주로부터의 탈출을 꿈꿨지만, 결국 같은 죄를 반복했다. 게다가 아들을 잃었고, 오빠들을 잃었으며, 드라우파디는 여전히 침울했다. 승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마하바라타가 남긴 가장 깊은 질문이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우디슈티라에게도 깨달음을 권한다. 행동은 필연이며, 그 행동의 결과는 신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르침도 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행동의 결과는 실제로 수백만 명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하바라타는 철학적 이상과 현실의 비극적 간극을 직면하게 한다.

 

 

마하바라타와 현대 인생의 연결고리

 

Q: 마하바라타는 현대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A: 마하바라타의 핵심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이 항상 명확하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현대의 직장인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양심을 타협해야 할 때가 있다. 부모는 자식의 꿈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것이 아르주나의 고뇌와 다르지 않다. 마하바라타는 이런 상황에서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Q: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을 쉽게 말하면?

 

A: 삶은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승리나 패배,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하면 안 된다. 오직 행동 자체에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우주의 의지에 맡겨야 한다. 이것이 카르마 수행법의 본질이다. 현대의 표현으로는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는 스트레스와 불안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다.

 

 

마치며 - 마하바라타가 남긴 영원한 질문들

 

10만 송의 방대한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쿠루크셰트라 평원으로 돌아간다. 모든 전투가 끝났을 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모래 위에 흘린 피는 마르고, 죽음들은 통계 숫자가 되어 역사책에 기록된다. 하지만 각각의 죽음 너머에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 있었다.

 

마하바라타가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가장 긴 서사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도덕적 질문을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마하바라타는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각 세대의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권한다.

 

드라우파디의 울음소리, 아르주나의 화살, 비슈마의 피, 크리슈나의 깊은 눈빛. 이 모든 것들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마하바라타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느 왕이나 영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이며,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마다 살아 숨 쉰다.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 우리가 견뎌야 하는 고통, 우리가 추구해야 할 깨달음. 이 모든 것이 마하바라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독자는 지금 혹시 아르주나처럼 전장에 서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의 쿠루크셰트라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크리슈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활을 당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