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 김쓰
조선시대 역사를 평가할때, 대단한 왕으로써 기록되는 왕들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들이 제대로 교육받아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긴 조선왕조역사를 이어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왕실에서의 교육은 문무를 겸비하는 것을 목표로 학문과 더불어 예술의 영역까지도 공부하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어떠한 교육을 받았을까?
세자와 세손의 교육
왕실에서 체계적으로 왕자의 교육을 시작한 것은 태종때부터이다. 왕실에서는 태교부터 교육의 일환으로 여겼는데, 가야금과 거문고 등의 음악을 주로 들었으며, 임신 5개월부터는 사서삼경을 낭독하여 들려주었다고 한다. 왕자가 태어난 이후에는 보양청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보양청에서의 교육은 1세부터 3세까지 진행되었다. 보양청은 원자나 원손의 보호와 양육에 대한 책임을 맡는 곳이긴 하였으나 실제의 양육은 궁중의 내명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 보양청 : 세자시강원이나 세손강서원의 부설기구로 원자나 원손의 출산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원자는 왕의 적장자, 원손은 왕세자의 적장자로 원자 보양관은 기본적으로 종2품 이상의 고관 3명을 임명하였다. 원손 보양관은 정3품 당상관 이상의 관원 중 2명을 선임하였고, 보양청에서는 책색서리 2명, 수청서리 4명, 서사 1명, 사령 4명, 소공 1명이 배정되었다.
이후 왕자가 글을 배울때쯤 보양청은 강학청으로 이름을 개편하여 교육을 이어나갔다. 8세가 되면 왕위 계승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교육방식은 질의응답식이었다. 이 시기에 주로 세자나 세손으로 책봉되었다. 세자는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에서 교육을 받았고, 세손의 경우에는 세손강서원과 세손위종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경전 교육과 역사 수업, 무예 훈련, 농경 실습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세자나 세손이 11세가되면 회강을 한다. 회강은 한달에 두번 신하들 앞에서 강학으로 이루어졌으며 교육을 책임지는 관리들은 모두 참석하여야 했으며, 왕 또한 자주 참여했다고 한다.
교육 내용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 환경적 교육 : 태어나기전 시작되는 태교는 물론 왕자 주위 인물들의 성품 등을 고려하였다.
- 덕성 함양을 위한 교육 : 좋은 성품의 사람들을 배치하는 것은 물론 교육을 통하여 덕을 익혔는데, 소학 등을 통해 오륜을 습득하였으며, 스승을 대하는 자세나 왕실 어른을 대하는 기본예절 교육이 있었다고 한다.
- 예를 중시하는 교육 : 조선에서는 책봉례, 입학례, 가례 등의 예가 많았는데 이외에도 국왕이 되면 오례로 구성되는 국가 전례를 주관하였다. 이를 위해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에는 국왕이 주도하는 국가 전례를 익혔으며,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여 접대를 하기도 하였다.
- 지식적 교육 : 유교경전, 역사 등을 배워 후에 신하가 올리는 문서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 예체능적 교육 : 체조, 활쏘기, 말타기 등의 건강을 위하거나 기본적 소양으로써의 교육은 물론 서예, 그림, 음악에도 일정한 소양을 갖추어야 했기에 교육하였다.
다른 왕자들은 어떠한 교육을 받았을까?
왕위 계승자인 세자와 세손의 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졌으나, 그외의 대군과 군들의 교육은 제도적인 장치를 갖지 못하여서 부왕의 관심에 따라 개인교습으로 이루어졌다. 그 당시 종친에게는 임무를 맡기지 않는다는 명분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왕자들은 관직에 나가는것이 금지되었다.
그렇지만 왕실관련 기관의 임무를 수행하거나 왕실자제로서의 품위를 지켜야했기 때문에 세자와 세손 이외의 왕자들의 교육도 중요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모습은 왕의 바람에 따라 달랐는데 태종의 경우에는 경서에 박학한 이를 뽑아 대군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세종은 종친의 교육을 위해 종학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다만 종학은 종친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지 다음 후계를 위한 교육기관은 아니었으므로 양반들의 교육과 큰 차이점은 없었다. 이후 세자나 세손을 제외한 모든 왕자들은 11세에서 14세경에 결혼을 하여 궁 밖으로 나가 살아야했기 때문에 부왕의 관심이 줄어들어 소수의 재능 있는 왕자들만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세자나 세손을 제외한 왕자들의 교육은 일반적인 양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하니 조금은 의외였다. 위에 언급한 것 외에 세자는 심신수련을 목적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건식과 습식 피부마찰을 하고 겨울에는 눈으로 온몸을 비비고 추운 날씨에도 홑바지저고리를 입는 등의 신체를 단련하는 사신수련법도 있었다고 하니, 조선시대의 왕자들의 교육 중 단연 세자와 세손의 난이도가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끝.
'정보 > 관심있는 정보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마니아의 의사당 궁전 (0) | 2023.11.11 |
---|---|
펫팸족과 펫코노미 산업 (0) | 2023.11.10 |
항공보안법과 공항 관련 법규 (1) | 2023.11.08 |
아동 방임과 아동 학대 (0) | 2023.11.07 |
캐나다의 메이플 시럽에 얽힌 이야기 (1) | 2023.11.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