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사진 / 김쓰
성덕대왕신종, 우리는 흔히 이 거대한 종을 에밀레종이라 부른다. 경주로 여행을 가본 이라면 꼭 한 번쯤 박물관에서 마주했을 그 존재감 그리고 그에 얽힌 아련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늘은 이 에밀레종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 한 자락을 담아본다.
에밀레종의 탄생, 그리고 봉덕사에 깃든 시간
성덕대왕신종은 771년에 34년의 긴 세월 끝에 완성된 통일신라의 걸작이다. 원래 봉덕사라는 사찰에 봉납되었으며 당시 신라 왕실의 정신적 자긍심이자 불심을 상징하는 거대한 종이었다. 종의 표면에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향을 올리는 모습과 신라 문화의 정수를 녹여낸 비천상, 용뉴, 음통 등 아름다운 조각이 이어져 있다. 경주 북천 근처의 봉덕사 터, 그 자리에 앉으면 저 멀리 신라인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하다.
성덕대왕신종, 즉 에밀레종은 771년 주조 이후 오랜 세월 봉덕사에 자리했다가 오늘날에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대한민국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교 예술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설이라는 이름의 슬픈 메아리, 에밀레의 유래
에밀레라는 이름에는 어린 아이가 희생되었다는 전설이 따라붙는다. 주조가 번번이 실패하자 인신공희, 즉 산 사람의 희생을 치러야 종이 완성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갓난아이를 도가니에 던졌고 종이 완성되자 종의 소리 속에서 아기의 "에밀레"라는 울음이 들렸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은 이 전설이 실제 사건이라기보다 신라 시대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집단적 트라우마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라는 데에 무게를 싣는다. 불교의 해탈과 자비 이념 그리고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희생하는 모순, 무엇보다 당대 용광로의 크기와 기술적 한계 등을 생각하면 에밀레종 전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상징적 이야기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신라의 기술과 예술, 그리고 과학적인 감성까지
이 거대한 청동 종은 높이 3.663m, 최대 지름 2.227m, 무게가 무려 18,900kg에 이른다. 표면의 웅장한 용뉴, 피리 모양의 음통, 주조 과정에 참여했던 숙련된 장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종은 소리에 있어서도 독특한 과학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종을 두드리면 1분이 넘도록 이어지는 깊은 울림, 지구, 하늘, 인간의 조화를 상징하는 듯한 3중의 주파수 파동 그리고 명료한 맥놀이까지. 이 종을 타종하면 맥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운이 우리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최근에는 3D 스캐닝, UAV 촬영 등 첨단 기술로 보존상태를 정밀 진단하며 그 진가를 새롭게 확인중이다.
에밀레종이 남긴 울림, 문학과 예술의 향기
에밀레종은 시, 소설, 음악, 연극 등 수많은 예술작품의 소재로 사랑받아 왔다. 범종의 울림은 곧 중생을 깨우는 부처의 소리이자 가슴깊은 울림, 아득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판소리, 정가, 현대음악과 어우러진 공연, 아이의 희생을 슬픔 대신 해탈로 승화시키는 시와 소설들 여기에 민족의 혼과 예술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에밀레종이 전하는 감성과 상징성은 하나의 범종을 넘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전체에 색다른 울림을 준다.
시
특히 시인 박종화는 <에밀레종>을 통해 신라시대의 예술미와 에밀레종의 애잔한 슬픔을 시로 노래하였으며 그밖에 여러 현대시인이 에밀레종의 전설과 종소리를 다양한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연극
연극에서도 에밀레종 전설은 자주 각색되었다. 대표적으로 <남산에서 길을 잃다>는 삼국유사의 에밀레종 설화와 혜공왕 전설을 새롭게 재구성해 현대인의 질문과 고민을 담은 무대로 선보였다.
영화
1970년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대형 화면으로 제작된 영화 <에밀레종>은 당시 2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으로 대중적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에밀레종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버금가는 상징적 가치로 과학적 조사와 디지털 아카이빙 그리고 살아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된다. 경주국립박물관 현장에서는 어린이 맞춤 디지털 전시, 종소리 체험 등 새로운 세대를 위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개방중이다. 또한, 종의 표면 부식과 마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기적 3D 스캔과 모니터링이 이루어진다. 종이 품은 오랜 역사와 전설 그리고 고요한 울림이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오늘도 많은 이가 노력한다.
상식을 넓히는 퀴즈
문제: 에밀레종 전설에서 실제로 희생됐다는 '인신공희' 이야기가 설득력을 잃게 된 결정적 이유 두 가지를 골라보자.
1) 불교의 불살생 계율과 모순된다.
2) 당대의 용광로 크기로는 사람을 넣기 어려웠다.
3) 종 표면 문양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4) 종소리의 여운이 길어서이다.
정답: 1, 2
관람정보
위치 -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운영시간 - 10 : 00 - 18 : 00(일 - 금) / 토요일(3 - 12월) 10 : 00 - 21 : 00
문의 - 054-740-7500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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