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사진 / 김쓰
오늘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 바로 '직지심체요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계실 텐데 이 책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차근차근 풀어보겠다.
직지심체요절, 그 이름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책은 보통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라고 부른다. 백운화상 경한(1298-1374)이라는 고려 말 승려가 부처님과 큰스님들의 가르침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 만든 책이다.
'직지심체'라는 말은 '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는 불교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참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직시하면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자기 마음을 올바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미 부처가 있다는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라는 절에서 세계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백운화상의 제자들인 석찬과 달잠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금속활자로 직지를 인쇄한 것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시겠는가? 서양에서는 145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서를 인쇄한 것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했던 것이다.
직지의 파란만장한 여정, 프랑스로 가다
현재 직지 하권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떻게 우리 문화유산이 프랑스에 있게 되었을까?
1887년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플랑시가 우리나라에서 고서들을 수집했는데 그 속에 직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1911년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가 180프랑에 구입했고 1950년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해외로 나간 덕분에 직지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전시회에서 박병선 박사가 이 책을 발견하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했다.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금속활자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목판 인쇄는 책 한 면 한 면을 나무에 새겨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나무라서 오래 사용하면 닳거나 썩기도 했다. 하지만 금속활자는 한 번 만들어 놓으면 글자를 자유롭게 조합해서 여러 책을 찍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청동으로 만들어져 1200도가 넘는 온도에서 제작되었다. 구텐베르크의 납활자가 360도 정도에서 만들어진 것과 비교하면 훨씬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우수한 기술력이 있었기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직지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
직지는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인류가 지식을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게 된 혁명적인 전환점을 보여준다. 금속활자 인쇄술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직지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부처가 있다는 이 메시지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이런 철학적 깊이와 인쇄 기술의 혁신이 만나 탄생한 것이 바로 직지다.
직지 반환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논의
직지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구해왔다. 특히 2011년 외규장각 의궤가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직지 반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우리 정부와 문화재청은 영구 임대 방식 등 다양한 제안을 했지만 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2021년 황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프랑스를 방문해 직지의 한국 전시를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청주시도 '직지코리아 페스티벌'을 위해 여러 차례 대여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프랑스가 직지 반환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지가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와 달리 직지는 주한프랑스공사가 정당하게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법상 정당한 구매를 통해 해외로 반출된 물품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매우 어렵다.
또한 프랑스 측은 직지를 한국에 대여할 경우 압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했던 국내 전시도 무산되었다. 한때는 전시 목적으로 들어온 문화재를 압류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류 면제 조항'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명문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적인 변화도 있었다. 2018년 마크롱 대통령이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을 추진하면서 직지 반환 논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단계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재로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장고에 잠자고 있는 직지를 일반에게 공개하도록 유도하거나 국내 전시 대여를 추진하는 등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직지가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꾸준히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직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자부심 그 이상이다. 600여 년 전 청주의 작은 절에서 승려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자 했던 그 간절함, 금속활자 하나하나를 만들며 쏟았을 정성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직지는 명실상부 인류 공동의 보물이 되었다. 비록 프랑스에 있지만 그 가치는 온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언젠가는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직지가 주는 가르침과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상식을 넓히는 퀴즈
문제: 직지심체요절이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몇 년 앞서 인쇄되었는가?
정답: 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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