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사진 / 김쓰
몇 년 전, 한 역사학자가 승정원일기를 연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749년 여름, 영조가 며칠 동안 계속 두통을 호소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 날씨 기록을 보니 유난히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왕도 더위를 피하기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이처럼 승정원일기는 교과서에서는 절대 알수 없는 생생한 조선의 일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승정원일기, 도대체 뭐길래?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기록한 일기다.1623년(인조 1년) 3월부터 1910년(융희 4년) 8월까지 무려 288년간의 기록이 3,243책에 담겨있다.
'승정원'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극에서 왕이 "도승지를 들라 하라!"고 외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 도승지가 일하던 곳이 승정원이다.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가, 어떻게 썼을까?
승정원일기는 정7품 주서라는 관리가 작성했다. 이들은 왕을 늘 곁에서 모시며 왕과 신하들이 나눈 대화, 왕의 일정, 심지어 그날의 날씨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다.
재미있는 건 주서들이 일종의 '속기사'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의할 때 옆에서 초책이라는 속기록에 빠르게 받아 적었다가 나중에 정서해서 한 달치씩 묶어 보관했다. 한 달 분량이 보통 한 책이었는데 중요한 일이 많은 달은 두 책이 되기도 했다.
무엇을 기록했을까?
승정원일기에는 정말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왕이 내린 명령, 신하들의 상소문, 각 관청의 보고서는 물론이고 왕의 건강 상태, 궁중 행사, 심지어 매일의 날씨까지 기록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88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날씨 정보다. 이는 조선시대 기후 연구는 물론 전 세계 기후 변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왕의 진료 기록은 한의학 연구에 천문 현상 기록은 천문학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승정원일기의 파란만장한 역사
사실 조선 전기에도 승정원일기가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고 그 후 다시 작성한 일기도 이괄의 난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일기도 순탄치 못한 역사를 거쳤다. 1744년(영조 20년) 승정원 화재로 많은 분량이 손실되었고 1888년(고종 25년)에도 또 한 번 화재로 361책이 불탔다. 그때마다 조보나 각 관청의 기록, 개인 일기 등을 참고해 복원 작업을 했다.
실록보다 더 생생한 기록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실록을 최고의 역사 기록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승정원일기가 더 원본에 가깝다. 실록은 왕이 죽은 후 여러 기록을 참고해 편찬한 2차 자료인 반면 승정원일기는 그날그날 작성한 1차 자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록에는 "왕이 이렇게 명했다"고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에는 왕과 신하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당시 상황을 느낄 수 있다.
세계가 인정한 기록유산
승정원일기는 단일 기록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중국의 25사(3,386책, 약 4,000만 자)나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 자)보다도 훨씬 방대하다. 총 3,243책에 2억 4,250만 자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9년 국보 제303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9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서 느끼는 건 단순한 기록의 방대함이 아니다. 28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을 이어간 선조들의 집념과 정성이 대단하다. 전쟁과 화재 속에서도 어떻게든 복원하려 했던 그 노력이 감동적이다.
원본은 초서체로 쓰여 있어 읽기 어려웠지만 1960년부터 1977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해서체로 고쳐 쓰는 대작업을 완료했다. 현재는 온라인으로도 열람할 수 있어 누구나 조선시대의 생생한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상식을 넓히는 퀴즈
문제. 승정원일기가 기록한 기간은 총 몇 년인가?
정답: 288년(1623년-1910년)
승정원일기,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승정원일기를 직접 보고 싶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승정원 일기
가장 편리한 방법은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홈페이지(sjw.history.go.kr)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승정원일기 전체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온라인 열람의 장점
- 규장각 원문 이미지도 함께 볼 수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본도 연계되어 있다(일부 왕대)
-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 관련 자료도 함께 확인 가능하다
- 인명, 지명, 서명 등이 색깔로 구분되어 읽기 편하다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승정원 일기
원본을 직접 보고 싶다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방문해야 한다. 다만 원본은 보존을 위해 일반 공개하지 않으며 영인본이나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규장각 열람 정보
- 위치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열람시간 - 평일 09:00 - 18:00(점심시간 12:00 - 13:00 제외)
- 열람료 - 무료(단, 복사나 촬영은 별도 신청 필요)
- 예약 - 사전 예약 필수(규장각 홈페이지에서 열람 신청)
관람 팁
- 초서로 쓰여 있어 읽기 어려우므로 탈초본을 추천한다
- 방대한 분량이므로 미리 관심 있는 시기나 사건을 정해서 가는 것이 좋다
- 온라인에서 먼저 검색해보고 필요한 부분을 메모해가면 효율적이다
- 연구 목적이 아니라면 온라인 열람이 더 편리하다
'한국사(Korean History) > 전통예술 및 유산(Traditional Arts & Herit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의보감, 시간을 넘어 전해지는 의학의 지혜 (4) | 2025.07.24 |
|---|---|
| 조선왕조의궤, 500년 왕실의 숨결을 담은 특별한 기록 (3) | 2025.07.24 |
| 직지심체요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 | 2025.07.23 |
| 내명부 제도의 모든 것 - 권력, 질서 그리고 여인들의 삶 (1) | 2025.07.22 |
| 훈민정음, 백성을 향한 진심이 담긴 이야기 (4) | 2025.07.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