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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World History)/신화, 전설, 민담(Myth, Legend, Folk tale)

키토 파네시요 언덕, 날개 달린 성모상이 지켜보는 도시

by 김쓰 202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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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대가 겹겹이 선 언덕, 파네시요를 표현해보았다 고증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으니 참고할 것

글·사진 김쓰

 

고도 2,800미터를 훌쩍 넘는 도시 키토 한가운데, 둥근 빵처럼 봉긋 솟은 언덕 하나가 있다. 해가 저물 무렵, 오렌지빛이 안데스 능선을 감싸 안을 때 그 언덕 위에는 거대한 여인이 날개를 펴고 서 있다. 사탄을 상징하는 뱀을 밟고,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파네시요 언덕 성모상이다.

 

 

"작은 빵"이 되기 전, 야비락·슝골로마 - 이름에 담긴 언덕의 기억

 

파네시요(El Panecillo)는 스페인어로 "작은 빵 조각"이라는 뜻이다. 멀리서 보면 꼭 구워낸 둥근 빵을 얹어놓은 듯하다고 해서, 정복 이후 스페인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언덕의 이름은 처음부터 "작은 빵"이 아니었다. 스페인이 오기 훨씬 전, 이곳은 원주민 케추아와 안데스 사람들에게 야비락(Yavirac) 혹은 슝골로마(Shungoloma, '산의 심장')로 불리던 성스러운 언덕이었다.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계절의 리듬에 맞춰 축제를 열던 곳. 지금은 성모상이 선 그 자리에, 한때는 황금 장식으로 빛났다는 태양 신전이 서 있었다고 여러 전설은 말하고 있다.

 

정복의 시간은 이름을 바꾸고, 풍경을 바꾼다. 야비락과 슝골로마는 서서히 입에서 사라지고, 대신 "엘 파네시요", 작은 빵이라는 다정하면서도 식민지적인 이름이 도시 사람들의 입에 올라온다. 둥근 빵처럼 귀엽게 불리지만, 그 안에는 태양 신전이 파괴된 뒤의 공허함과 정복의 기억이 겹쳐져 있다.

 

Q: 이 언덕에 황금 태양 신전이 있었을까?


A: 고고학적 발굴 결과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스페인 정복 당시 안데스 여러 지역에 황금 장식의 태양 신전이 존재했고, 정복 과정에서 대부분 약탈·파괴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 파네시요 언덕의 이야기는 그런 역사적 맥락 위에서 형성된 현지 전설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이름은 누군가의 시선이 남기는 주석이다. 야비락, 슝골로마, 파네시요. 어느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이 언덕은 신전이 되었다가 정복자의 감탄사가 되었다가, 오늘의 관광지가 된다.

 

 

태양 신전에서 요새, 그리고 성모상까지 - 격동의 시간

 

수세기가 흐르며 태양 신전은 사라지고, 언덕은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 식민지 시대, 키토는 안데스 고산지대의 요충지였고, 이 언덕은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고지였다. 자연스럽게 이곳에는 요새와 방어 시설, 저장 구조물이 들어서게 된다. 신의 시선이 지켜보던 언덕이, 제국의 눈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1822년, 에콰도르 독립의 분수령이 된 피친차 전투(Batalla de Pichincha)는 파네시요 언덕을 중심으로 한 키토 주변 지형을 배경으로 벌어졌다. 실제 전투는 키토 서쪽 피친차 화산 비탈에서 일어났지만, 독립군과 왕당파 모두 이 고지대를 중심으로 전황을 파악하고 움직였을 것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며, 낡은 요새는 그 역할을 마친다. 1970년대 중반, 에콰도르와 키토 시는 이 언덕 위에 도시를 지키는 새로운 상징을 세운다. 대포 대신 날개를 펼친 성모 마리아가 도시를 내려다보게 하자는 결정이었다. 군사 시설에서 신앙의 상징으로, 파네시요 언덕의 변화는 이 도시가 겪은 식민지·독립·근대화의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Q: 파네시요 언덕은 왜 키토를 360도로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지라고 불릴까?


A: 해발 약 3,000미터의 파네시요 언덕에서는 북쪽의 현대식 건물, 남쪽의 오래된 주택, 중앙의 광장과 대성당, 멀리 피친차 화산 능선까지 한 번에 펼쳐진다. 골짜기 형태로 길게 뻗은 키토의 지형상, 이곳이 도시의 전체 윤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날개 달린 성모, 레가르다에서 알루미늄 거상까지

 

파네시요 위 거대한 성모상은 사실, 손바닥에 올려둘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조 조각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베르나르도 데 레가르다(Bernardo de Legarda, ca. 1700-1773)라는 조각가는 1734년 12월 7일 완성된 높이 약 1.2미터의 "키토의 성모(Virgen de Quito)" 조각을 만든다. 옷자락이 휘날리고 몸이 한쪽으로 비틀려 춤을 추는 듯한 이 성모는 "춤추는 성모(La Virgen Bailarina)"라 불렸다. 유럽식 도상에 안데스의 감수성이 섞인, 매우 "키토적인" 이미지였다.

 

수 세기 뒤, 키토 시는 이 작은 조각을 거대한 도시 상징으로 만든다. 스페인 조각가 아구스틴 데 라 에란 마토라스(Agustin de la Herran Matorras)가 약 7천 개의 알루미늄 조각으로 대형상을 설계했고, 1975년 3월 28일 완공된 이 성모상은 45미터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날개 달린 성모상 중 하나가 된다. 작은 목조 조각이 세기를 건너 거대한 금속의 여인이 되어, 식민 도시와 현대 도시를 함께 내려다보는 풍경은 상징적이다.

 

 

악을 밟고 도시를 품은 여인 - 묵시록의 상징

 

파네시요 성모상은 요한계시록 12장 1-2절의 '묵시록의 여인(Woman of the Apocalypse)'을 형상화한다. 해를 옷처럼 입고, 달을 발 아래 두고,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인. 다른 성모상과 달리 사탄을 상징하는 뱀을 쇠사슬로 묶어 밟고 있다.

 

Q: 성모상이 뱀을 밟는 의미는 무엇일까?

 

A: 가톨릭 도상학에서 뱀은 원죄와 악의 세력을 상징한다. 파네시요 성모상이 뱀을 밟는 모습은 개인의 죄를 넘어 도시 전체를 괴롭히는 악과 불의를 제압해 달라는 집단적 기도를 시각화한 것이다. 키토 사람들은 이 상을 보며, 도시가 겪어온 지진·전염병·가난·폭력의 역사가 이 여인의 발 아래 잠잠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성모상 기단의 지구본 모양 구와 18개 기둥(에콰도르의 18개 주를 상징)은 마리아가 "하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 땅과 도시를 품은 수호자임을 보여준다. 1960-70년대 냉전기 에콰도르에서 이 성모상은 가톨릭적 도덕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도 활용되었다. 2016년 4월 대지진으로 손상된 성모상의 복원 과정은 키토 시민에게 도시 재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성탄절이 되면 성모상 주변의 화려한 조명 속에서 사람들은 어두운 하늘을 가르는 알루미늄 여인의 실루엣을 바라본다.

 

 

성모 아래에서 - 순례와 일상의 풍경

 

구시가지에서 택시로 언덕을 오르면, 파네시요 성모상이 머리 위로 솟아 있다. 계단을 따라 기단으로 올라가면 도시의 소음이 멀어진다. 성모상 내부의 전망 공간에서는 키토 시가지 전체가 18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해질녘, 성모의 실루엣 뒤로 안데스의 노을이 번진다. 한쪽에서는 어린아이가 어머니 손을 잡고 기도문을 속삭이고, 다른 쪽에서는 여행자가 셀카를 찍으며 웃는다. 주말이면 연인들과 가족들이 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순례와 관광, 일상과 비일상이 한 화면에 겹쳐진 이곳은 여행자에게는 인생샷을 위한 전망대이자, 현지인에게는 어린 시절 소풍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다.

 

Q: 파네시요 언덕은 안전할까?

A: 여러 여행자의 기록에 따르면 도보 이동 시 소매치기 위험이 있다고 조언한다. 택시나 투어 차량 이용, 해가 진 뒤 피하기 등의 주의가 필요하다. 성모상은 도시를 지켜보는 상징이지만, 언덕 주변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신앙과 낭만 못지않게 현실적인 안전 감각도 함께 챙겨야 한다.

 

키토 역사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 도시로 등록된 이후, 파네시요 언덕은 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프레임"이 되었다.

 

 

마무리 - 언덕 위의 여인

 

파네시요 언덕 성모상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도시의 역사가 한 사람의 삶처럼 느껴진다. 태양 신전의 시절, 요새의 시절, 그리고 성모가 도시를 품는 현재. 세 시대가 한 언덕 위에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언덕은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다. 야비락과 슝골로마는 거의 잊혀지고, 지금은 "작은 빵"이라 불린다. 그 안에는 황금 신전의 기억, 정복의 상처, 독립전쟁의 긴장, 냉전기의 이념 갈등, 그리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언덕을 오르는 여행자는 그 모든 시간을 한 번에 짊어지고 올라간다. 바람이 센 언덕 위에서 거대한 성모상이 발 아래의 뱀을 밟고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도시를 지키는 힘은, 결국 어디에서 오는가."

 

어쩌면 답은 성모상의 발치가 아니라, 언덕 아래 골목골목을 채우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일상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를 올려다본다. 신에게, 상징에게, 혹은 스스로의 마음에게 말을 걸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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