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사진 / 김쓰
오늘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와 그의 대표작 《북학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최근 박제가의 친필본 《북학의》가 국가유산청에 의해 보물로 지정 예고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는데 과연 이 책이 왜 그토록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박제가, 시대를 앞서간 실용주의자
박제가(1750-1805)는 조선 후기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는 수기, 호는 초정이었다. 그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 그룹인 백탑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유득공, 이덕무 등과 함께 어울리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공유했던 것이다.
박제가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은 조선이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안대회 교수는 이 시기를 "조선의 지식인들이 기존의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설명한다. 특히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목격한 연행사절단의 경험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북학의》의 탄생 배경과 구성
《북학의》는 박제가가 1778년과 1790년 두 차례에 걸쳐 청나라를 방문한 후 집필한 책이다. 북학이란 북쪽의 청나라에서 배운다는 뜻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목이었다. 왜냐하면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여전히 중화문명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며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는 화이론적 세계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학의》는 크게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업부터 상업, 수공업, 건축, 의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박제가는 직접 목격한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조선에 도입할 방안을 제시했다.
북학의 요약 구성
| 항목 | 내용 요약 |
| 저술 배경 | 박제가가 1778년(정조 2년) 청에 다녀온 후 3개월 만에 초고 작성 |
| 책 구성 | 내편 39항, 외편 17항 구조(총 2권 1책) |
| 사상 핵심 | 청의 기술, 상공업 도입·도로 확장·분업·표준화 등 현대적 경제 개혁 제안 |
| 사회적 영향 | 당시 관료·지식계에선 급진적이라 평가됐으나 오늘날 조선의 국부론으로 평가 받음 |
우물 비유로 본 박제가의 경제사상
《북학의》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바로 '재물을 우물물에 비유한' 부분이다. 안대회 교수의 완역본을 참고하면, 박제가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내면 퍼낼수록 가득 차고, 버려두면 말라버린다."
이는 당시 조선의 검약 일변도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소비를 죄악시하고 절약만을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가 오히려 경제를 침체시킨다는 통찰이었다. 이헌창 교수는 이를 중상학파적 경제사상의 선구적 표현이라고 평가한다.
신분제 개혁과 인재 활용론
박제가의 개혁 사상은 경제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서얼 차별 철폐와 과감한 인재 등용을 주장했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한 호소였다. 연암 박지원과의 교류를 통해 인물성동론의 영향을 받은 그는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제가의 이러한 사상은 조선 후기 실학의 핵심적 특징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기술적 개혁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매우 혁명적이었다.
친필본의 문화재적 가치
2025년 7월, 국가유산청은 박제가 친필본 《북학의》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 친필본은 저자가 직접 쓴 원고본으로 문헌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서울신문은 이를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안대회 교수는 20여 종의 사본을 비교 검토하여 정본을 확립했는데 친필본의 발견으로 텍스트의 정확성이 한층 높아졌다. 특히 저자의 수정 흔적이나 가필 부분을 통해 박제가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다.
현대적 의미와 시사점
박제가의 《북학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열린 자세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자존심과 편견을 버리고 배울 것은 배우자는 실용주의적 정신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비 진작론이다. 이헌창 교수는 박제가의 경제사상이 케인스주의의 선구적 형태라고까지 평가한다. 소비가 생산을 촉진하고 생산이 다시 고용을 창출한다는 선순환 구조에 대한 이해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셋째, 능력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다. 신분이나 배경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박제가와 《북학의》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움에 열린 자세를 가지며, 실용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하다. 특히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박제가는 시대를 앞서간 혁신가였다. 그가 꿈꾼 부강한 조선은 비록 그의 생전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의 정신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학의》를 읽으며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혁신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상식을 넓히는 퀴즈
문제 1.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재물을 비유한 것은 무엇인가?
1) 바다
2) 우물
3) 강
4) 호수
문제 2. 박제가가 청나라를 방문한 횟수는 몇 번인가?
1) 1번
2) 2번
3) 3번
4) 4번
문제 3. 다음 중 박제가와 함께 백탑파 활동을 한 인물이 아닌 사람은?
1) 유득공
2) 이덕무
3) 정약용
4) 박지원
정답: 문제1-2번, 문제2-2번, 문제3-3번
《북학의》 친필본을 만날 수 있는 곳 - 수원화성박물관
박제가의 친필본 《북학의》는 현재 수원화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친필본은 저자가 직접 쓴 원고본으로 최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으며 20여 종의 사본과 교감 작업을 거쳐 그 진정성이 확인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 방문 정보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 관람시간 - 09:00-18: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관람료 - 성인 2,000원, 어린이/노인 무료
- 문의 - 031-5191-4242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현재 박제가의 친필본《북학의》를 공개하고 있지 않으며 이후 정기 전시에 포함되거나 특별 기획전에서 순회 전시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학의》쉽게 읽을 수 있는 해석본 추천
안대회 《완역 정본 북학의》(돌베개, 2013)
- 원문에 충실한 완역본
- 상세한 주석과 해제 포함
- 학술적 가치가 높으면서도 일반 독자도 접근 가능
곽은우 《박제가 북학의》(김영사, 2009)
- 현대 독자를 위한 쉬운 해설
- 주요 사상을 테마별로 정리
-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조명
소진공 편역 《북학의》(범우문고, 2002)
- 생활사 중심의 해제 포함
- 정밀한 번역과 알기 쉬운 설명
- 역사책보다는 에세이처럼 읽을 수 있는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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