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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Korean History)/인물탐구(People in Korean History)

외솔 최현배 - 한글을 지킨 삶과 언어 정신

by 김쓰 202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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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공표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상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보았다

글·사진 김쓰

 

찬바람이 스미던 겨울, 함흥 감옥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한 사람이 떨리는 손끝으로 삶을 적어 내려간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도 놓지 않은 하나, 우리말과 우리글. 그 사람, 외솔 최현배(1894~1970). 한글을 지키고 보급하며 말과 글의 힘으로 공동체의 품격을 세우려 애쓴 삶이었다.

 

 

최현배는 왜 한글 연구에 몰두했을까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검소하고 성실한 품성으로 학업과 실천을 아울렀다. 서양 교육사상에 주목해 이성과 과학성에 뿌리둔 교육관을 세우고, 이를 문해 교육과 언어 보급으로 연결했다. 일제강점기가 심화되며 동화·황국신민화 정책이 거세지자, 그는 더욱 다급한 마음으로 우리말과 한글의 연구·보급에 나섰다. 그에게 문자란 공동체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었다. 문자를 가꾸는 일은 곧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라는 믿음이 그의 일생을 이끌었다.

 

Q: 연구를 본격화한 동기는 무엇일까?

 

A: 3·1운동 전후의 민족운동 흐름과 선배 학인들의 국어운동 전통 속에서 언어가 정체성의 핵심임을 확신했다. 주시경 학맥의 사상적 영향을 이어받아 한글 전용, 규범 정비, 문해 확대를 과제로 삼았다.

 

 

한글맞춤법 통일안, 꿈과 고뇌의 기록

 

1933년 10월,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공표했다. 이 규범은 철자법의 근간을 체계화해 해방 전후의 교육·출판·행정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최현배는 사전 편찬과 맞춤법·문법 정리 등 학회 활동 전반에 적극 참여했다. 제정 과정에서는 표음주의와 형태주의의 균형, 학문적 타당성과 현장 실용성, 사회적 수용성을 두루 고려했다. 끝없는 토론 끝에 마련된 통일안은 해방 이전과 이후를 가로지르는 표기 규범의 기반이 되었고, 한동안 남북한에서 공통 준거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옥중에서 빛난 언어의 힘 - '순금편지'로 회자된 서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수의 연구자들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거됐다. 최현배 역시 체포되어 가혹한 수감을 견뎠다. 옥중 기록에는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도 언어의 존엄과 민족의 정신을 다진 흔적이 남아 있다. 그가 남긴 서간과 시조들은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언어 사랑과 의지를 전한다. '순금편지'라는 표현은 이 옥중 기록의 귀함을 비유한 명칭으로 이해할 수 있다.

 

Q: 조선어학회 사건은 무엇인가?

 

A: 학술 활동과 사전 편찬·규범 정비가 독립운동과 연루된 것으로 간주되어 경찰 당국이 관련 인사들을 검거·기소한 사건이다. 한국어·한글사에서 언어 공동체를 겨냥한 탄압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해방 뒤, 한글 교육 혁신으로 이어진 실천

 

해방 이후 그는 국어 보급과 교육 행정, 교과와 규범 정비에 폭넓게 참여했다. 미군정기와 이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두 차례 재직하며 교과서 편찬, 표기·용례 정비, 강연과 기고를 통해 한글 전용과 문해 확대를 실천했다. 전국 강습과 강연에서는 맞춤법과 읽기·쓰기 교육을 현장에 연결했고, 한글의 원리와 표기 체계를 삶의 언어로 풀어 전하려 애썼다.

 

 

대표 저술로 읽는 외솔의 생각

 

그의 사유는 저술에 응축돼 있다. '우리말본'에서는 문법 체계를 토대로 한국어의 내적 논리를 집대성했고(완간 1937), '한글갈'에서는 한글 연구의 역사와 이론을 정리했다(1941). 연구·교육·운동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는 구조였다는 점이 그의 텍스트 전반에서 드러난다.

 

 

오늘에 남은 유산과 교훈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모두가 읽고 쓰는 사회를 앞당기고, 언어의 주체성과 공공성을 함께 세우는 일. 이는 이후 문체·표기 정책과 문맹 퇴치 운동, 교육과 행정의 표준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시대에도 고유성과 소통성의 균형, 기술과 규범의 조화를 강조한 메시지는 유효하다. K-콘텐츠의 확산은 한글과 한국어의 국제적 가시성을 높이며, 그의 사유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게 한다.

 

 

마치며

 

외솔, 꿋꿋한 소나무라는 뜻처럼 그는 폭풍을 견디는 삶을 살았다. 식민지의 압력 속에서도, 옥중의 혹한 속에서도, 해방의 혼란 속에서도 그는 한글을 사랑하고 가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역사와 이론을 살피고, 일상과 교육으로 연결하려는 그의 끈기는 오늘 우리가 한글로 생각하고 배우고 소통하는 삶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바람 속에서도 뿌리를 놓지 않는 소나무처럼, 시대를 넘어 우리의 말과 마음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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