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 김쓰
비가 갠 오후, 인왕산의 화감암이 젖은 숨을 내쉬고 있다. 물안개가 바위의 주름을 스치며 오르내릴 때, 한 노화가의 손이 먹빛을 더 깊게 눌렀다. 76세의 정선. 그에게 이 한 폭은 풍경의 기록을 넘어, 한 시대의 마음과 한 사람의 우정을 건네는 마지막 편지였다. 그리고 그 편지의 제목은 인왕제색도. 비 뒤의 빛이 돌아오는 순간을 붙잡아 영영 흐르지 않게 만든 그림이었다.
왜 정선은 우리 산을 그렸나
젊은 시절부터 정선의 아침은 바위의 결과 빛의 방향을 확인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하루의 온도와 바람의 습도는 붓끝의 힘을 바꾸었고, 바위의 표면에 맺힌 작은 물기까지 그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땅의 얼굴은 멀리서 읽는 법전이 아니라, 매일 마주 서야 읽히는 표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낯선 이상향의 산을 베끼는 대신, 발로 닿는 경사와 손으로 만져지는 거친 결을 화면으로 옮겼다. 답사라는 말보다 더 오래된 습관, 걸음으로 그리는 그림. 정선은 그 길에서 '실경'을 품었고, 화폭 위에서 '진경'으로 다시 빚었다. 진경이란 눈앞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정직함이 아니라, 그 안의 호흡을 꺼내는 용기였기 때문이다.
인왕제색도 - 우정과 비 뒤의 빛
그해 여름, 비가 그치고 공기가 맑아지는 시간대는 짧았다. 정선은 그 짧음을 놓치지 않았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봉은 한덩어리 먹빛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십 번의 덧먹이 켜를 쌓아 만든 깊은 어두움이다. 아래로 내려오면 물안개가 허리를 풀고, 수목은 촉촉한 숨을 쉰다. 바위의 무게와 안개의 가벼움이 맞부딪히며, 화면엔 묘한 평형이 생긴다. 어둠이 있는데도 화면이 환한 이유, 바로 그 평형 때문이다.
이 그림이 사람들의 가슴을 오래 붙잡는 까닭은 기술의 정교함만이 아니다. 친구를 떠올리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정황이 더해지며, 그 어둠은 단순한 색조가 아니라 말 걸기 어려운 심정의 온도가 된다. 비가 그친 뒤 하늘 한쪽에서 새 기운이 들어오는 장면. 정선은 그 시간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누구보다 절제해서 붙잡았다.
답사와 재구성 - 실경에서 진경으로
현장에서 본 것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선의 정직이었다. 그는 산의 윤곽을 한 번에 훑어 기억으로 가져와, 화면에서 꼭 필요한 능선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비웠다. 멀리 있는 암봉을 오히려 진하게 눌러 원근의 관습을 비틀고,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렸다가 다시 위로 밀어 올리는 동선을 만들었다.
관찰이 모자라면 비울 수 없고, 비우지 못하면 진경이 되지 않는다. 정선은 본 것을 믿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기는 법, 놓는 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산은 늘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숨을 쉬었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그러나 사진이 될 수 없는 산.
정선의 붓끝 - 화면 설계 한눈에 보기
- 구도와 무게: 상부의 암봉을 크게 두어 화면을 눌러 놓고, 하부의 여백과 수목, 물안개가 그 무게를 받아낸다. 시선은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다시 하늘로 빠져나가며 비 뒤의 트임을 느낀다.
- 농담과 리듬: 바위는 겹겹의 적묵으로 양감을 세우고, 안개는 남겨 둔 종이의 흰 숨으로 만든다. 먹의 농담이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이 시간의 흐름을 들려준다.
- 필선과 결: 바위의 결은 문지르고 찍는 다양한 운필로 살리고, 수목은 편필로 짧게 끊어 호흡을 쌓는다. 선이 지나간 자리마다 수분이 남아, 화면에 공기가 돌기 시작한다.
- 대비와 조화: 무거운 암봉과 가벼운 안개, 짙은 먹과 맑은 하늘의 대비가 화면을 쪼개지 않고 하나로 묶는다. 서로를 지워 버리지 않는 대결, 그것이 조화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 최초 여행 화가라는 이름의 함정, 그리고 정선의 길
정선을 '최초의 여행 화가'로 불러 세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에게 더 어울리는 말은 '답사와 재구성을 체계화한 화가'일 것이다. 1711년 금강산을 걸으며 얻은 눈, 지방 근무와 유람 문화 속에서 얻은 발, 그리고 문인들과의 교유가 만들어 준 길. 공무와 이동, 후원과 우정은 그의 그림을 위한 넓은 들판이 되었다. 이 배경은 그의 작품이 단발의 영감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과 선택의 사물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선의 산수는 한 장면의 포착이 아니라, 수십 년의 발걸음이 만든 도착지다.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 두 장면, 한 마음
금강산을 그린 화면을 떠올려 보자. 능선은 더 길게 뻗고, 봉우리들은 서로를 밀어 올리며 하늘의 깊이를 판다. 반대로 인왕제색도는 한 봉우리의 중량감으로 화면을 거의 다 채운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깊다. 그러나 둘의 심장은 같다. 바람이 바위를 지나갈 때 생기는 미세한 떨림을 붙잡고, 물안개가 숲의 색을 바꾸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장엄과 친밀, 장거리와 근거리의 차이만 있을 뿐, 정선은 언제나 '살아 있는 산'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금강전도를 알고 인왕제색도를 보면, 그의 화폭이 산을 길들이지 않고 산의 호흡을 따라 걷는 방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조선의 눈으로 본 산수
정선의 그림은 한 가지 방법을 가르친다. 남의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전에, 오늘의 공기와 빛, 발밑의 흙을 먼저 믿으라고. 실경에서 출발해 진경으로 여무는 길은 지름길이 아니다. 천천히 걷고, 오래 보고, 과감히 비우는 길이다. 인왕제색도는 그 길의 언덕 위에 놓인 이정표처럼 서 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바뀌고, 빛이 돌어오던 그날의 오후처럼. 그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림은 여전히 숨을 쉰다. 그리고 그 숨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조용히 옮겨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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